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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좋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늦여름

대학 동기는 찬송가를 부르고 모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리고 후배는 잘 나가는 포워딩회사로 갔다. 나는 아직 취준생이었다.

더위의 절정이 한풀 꺾일 무렵, 욕심과 자존감을 내려놓기로 했다. 중소기업... 생각에도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잘나가는 대기업이건 포워딩회사건 유통중견회사건 일단 학점을 따야 졸업을 하니까, 잡코리아와 사람인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유명한 모 벤더회사 같은데는 이미 서류와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 그렇다면 비슷한 중소기업에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이력서를 넣은지 단 몇일만에... 면접이 덜컥 잡혔다.
 
면접은 서류 넣고 다음날 오후 시간이었다. 너무 갑자기 잡히는 바람에 부랴부랴 정장만 챙겨입고 나가고 넥타이도 깜빡했다. 집에서 2시간 30분 거리, 멀었지만 그게 대수인가, 일단은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장소가 홍대입구의 모 골목 단독건물이다. 우뚝 솟은 건물에 유리로 된 감각있는 디자인, 커다란 입구와 1층의 넓은 사무실, 그리고 넓은 공간, 가운데는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독특한 구조다. 2층에는 커피머신이 있었고 3층은 회의실로 보인다.
 
인사팀도 아니고 경영지원 담당자도 아닌 것 같은 모 여직원이 그 3층으로 안내했다. 가보니 벽에 이런저런 원단이 많이 걸려있었고, 무역 수출의 탑인지가 몇 개 있었다. 그리고 자잘한 특허인지 상장인지가 유리 락커 안에 모셔져있었다. 한 5분 기다렸을까? 또 다른 누군가 들어왔다. 면접관은 아닌 것 같았고, 나와 동일한 안내를 받았다. 둘이 그렇게 나란히 앉자마자 어떤 개구리 같이 생긴 사람이 들어왔고 본인 소개도 없이 갑자기 면접을 진행한다. 
 
"왜 이쪽은 넥타이도 안메고 면접을 왔어요? 기본이 안 되어 있네"
 
아 맞다 넥타이, 중소기업이건 바쁘건 챙겨야 하는게 맞다. 그런데 안 챙긴건 내 잘못이 맞다. 그런데 면접관도 넥타이를 안 메고 있고 신발은 슬리퍼를 신었던데 이건 무슨상황이지?
 
"죄송합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쨋던 짧지만 인정하고 간결한 답을 마치고, 갑자기 바로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어로 자기소개 해보세요."
 
갑자기? 왠 영어로 자기소개? 여튼 했다.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뭐 일상적으로 하는 그런 소개면 될 것 같다 생각했다.
 
"Hello, nice to meet you. My name is...."
 
그리고 옆에 있던 그 사람도 자기소개를 하는 줄 알았는데 영어를 전혀 못했다. 무역회사 아니었나? 여튼 이런저런 기억도 안나는 불필요한 질문이 오간 뒤에 2:1 면접은 10분만에 끝났다. 그렇게 끝나고 홍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생각도 안났지만 그저 2시간 30분 지하철을 타고 갈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가는 길, 한 30분 지났을까? 합격 통보 문자와 전화가 오고 내일부터 출근하라... 이렇게 결정된다고??
 
나중에 알았지만 나를 안내했던 그 모여직원은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입사한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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